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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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

by 스토리 플레이어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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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아침, 나는 작은 정원에서 한 송이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꽃은 지난봄에 심었던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 여름을 지나며 꽃봉오리를 맺고, 지금은 그 맑고 고운 빛깔을 뽐내며 가을 햇살 아래 피어 있었다. 나는 그 꽃잎 하나하나에 손가락 끝을 대어보았다. 부드럽고 얇은 그 감촉은 마치 오래전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편지의 낡고도 정겨운 종이와 같았다.

사람들은 꽃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아름다운 색채, 은은한 향기, 그리고 짧지만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 그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꽃잎에 새겨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흔적이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을 받고 자라온 존재가 가진 흔적처럼, 꽃잎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었다.

꽃이 피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땅 속에서 어두움을 뚫고 나오는 씨앗의 첫 발걸음, 그리고 햇빛을 향해 몸을 피워 올리기까지의 그 치열한 과정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삶의 의지가 가득 차 있다. 꽃잎에 새겨진 무늬는 마치 그 모든 노력과 기다림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늬는 한 사람의 사랑과도 같았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그 작은 흔적들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애정과 정성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늘 정원을 가꾸셨다. 할머니의 손길은 거칠고 주름져 있었지만, 꽃들을 만질 때면 한없이 부드러웠다. 꽃에 물을 주고, 시들지 않도록 가꿔주던 그 손길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할머니는 언제나 꽃을 사랑했고, 마치 꽃들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꽃잎에 대고 속삭이곤 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꽃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아름다운 장식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할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다. "왜 꽃을 그렇게 아끼세요?" 그때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닮았단다.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그 속엔 누군가의 사랑이 담겨 있지. 사람도 그렇고, 꽃도 그렇고, 보이지 않는 곳에 많은 노력이 있어야 피어날 수 있는 거야." 그 말씀이 어린 나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느 날,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을 바라보았다. 그 꽃잎은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방향을 잃어가는 듯하면서도 그저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무르는 꽃잎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삶도 그러한 게 아닐까 싶었다. 때로는 바람에 휘청이기도 하고, 방향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 자리에 피어나 있는 그 꽃처럼 우리도 버텨내며 살아간다.

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고, 우리가 그것을 돌보고 아껴줄 때 꽃이 보여주는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날, 꽃은 더욱 밝게 빛나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 촉촉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마치 우리도 좋은 날과 나쁜 날이 있듯이, 꽃도 그렇게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정원에 나가 떨어진 꽃잎을 주워보았다. 이미 시들어버린 꽃잎은 그리 오래전의 것은 아닌 듯했다. 손바닥 위에 놓인 그 작은 꽃잎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을지도 모를 그 꽃잎은 과연 어떤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피어났을까.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도 꽃잎과 같을 때가 있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시들어버리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다. 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애정이 모여 그 마음은 다시금 피어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건네고, 손을 잡고, 안아주며 살아간다. 그렇게 피어나는 사랑의 흔적이 우리 삶 곳곳에 남겨진다.

꽃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피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가 흐른다. 어쩌면 우리가 꽃을 통해 느끼는 것은, 그 짧은 순간 안에 담긴 영원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은 바로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해주는 작은 기념물인 셈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는 새로운 꽃을 맞이하고, 그 꽃은 또다시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마치 처음으로 사랑을 느낄 때의 그 두근거림처럼, 꽃이 피어나는 그 순간은 언제나 설레고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속에는 우리의 삶이,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도 나는 정원을 걸으며,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 나는 오래전 할머니가 꽃에게 속삭이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 목소리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따뜻하고, 그리운 사랑의 흔적이 되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꽃잎에 새겨진 그 사랑의 흔적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고, 다시금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이제 바람이 조금 더 불어오고 있다. 곧 떨어질 꽃잎들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 자리엔 또 다른 꽃들이 피어나겠지. 그리고 그 꽃들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그 흔적을 보고 또 다른 사랑을 배워간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삶은 다시 피어나고, 사랑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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