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통제 밖의 일엔 흔들리지 않고, 내 통제 안의 일에만 집중하라.”
이 짧은 문장은 스토아 철학 전체를 꿰뚫는 심장이다. 그 안에는 인간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평정과 해방의 열쇠가 고요히 숨어 있다. 마치 거센 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나무의 뿌리처럼, 이 철학은 삶의 폭풍 속에서 우리를 중심에 머물게 한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데서 지혜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의 『담화록』에서 그는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 판단, 욕망, 행동뿐이며,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타인의 말, 외부 사건, 질병, 죽음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에 매달려 삶을 소비한다.
이 구절의 핵심은 *‘통제’*라는 말에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붙들면 불안이 자라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몰입하면 자유가 열린다. 이토록 간명한 원리를 따르는 것이 어째서 그토록 어려운가?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주는 습관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 칭찬을 받고 싶은 기대, 인정받고 싶은 갈망—all these are external. 타인의 반응에 따라 요동치는 마음은 그 자체로 감옥 이다.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자기성찰
로마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썼다.
“세상은 네 마음이 해석하는 대로 존재한다. 그것을 괴로움으로 보지 않으면 그것은 괴로움이 아니다.”
황제라는 자리에 앉아도 세상의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쟁, 배신, 질병, 죽음—황제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태도를 바꾸며 자신을 지켰다. 스토아 철학은 바로 그런 것이다.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해석, 판단, 반응을 바꾸는 철학.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 관점은 이어진다.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는 스토아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발달한 심리치료법이다. 우리의 감정은 외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전제를 가진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하면 고통은 깊어진다. 그러나 “이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사건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반응뿐이다”라고 받아들이면 평온이 깃든다.
2. 고통과 자유의 경계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스토아 철학에 비판적이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깊이 공감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에게 닥치는 고통을 의지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진정 자유롭다.”
니체에게 있어서도 자유란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자세에서 온다. 그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고통을 단순히 무감각으로 대처한다고 비판했지만, 그 역시 “운명애(Amor fati)”라는 말을 통해 모든 일에 “예”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내면의 힘을 강조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삶을 말한다.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스토아적 자유의 확장이다.
3. 현실 세계에서의 적용
이 철학은 단지 고대 철학자들의 사유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실용적 가치가 있다.
한 기업가가 사업 실패 후 깊은 좌절에 빠졌을 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없지만, 다음 선택은 나의 몫이다.”
그는 실패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선택하고 행동하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이처럼 통제할 수 없는 과거에 머무는 대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의 실천이다.
운동선수들도 이 철학을 자주 인용한다. 유명한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는 중요한 경기에서 패한 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플레이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상대가 어떤 전략을 쓰든, 관중이 어떻게 반응하든 그것은 내 통제 밖의 일이다.”
이처럼 고도의 집중력과 정신력은 외부 요인에서 벗어나 내 행동 하나에만 몰입할 때 빛을 발한다.
4. 한국 사회와 통제의 철학
한국 사회는 비교적 외부의 평가에 민감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대학 입시, 취업, 승진, 결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강하게 작동한다. “남들이 뭐라 할까”라는 불안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타인이 기대하는 삶을 선택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바꿀 수 있는 것은 타인의 기대가 아니라, 그것에 대응하는 우리의 선택과 태도다. 젊은 세대의 많은 이들이 ‘탈조선’을 외치며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가운데서도, 결국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시점이 필요하다. 구조에 저항하되, 희생자가 아니라 주체로 설 수 있는 힘. 그것은 바로 내면의 통제에서 나온다.
5. 중심에 머무는 연습
스토아 철학은 단순히 “냉정해져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법을 가르친다. 세상의 파도가 거셀수록, 그 안에서 나의 배를 조종할 수 있는 키를 쥐는 일. 그것이 스토아적 삶이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너의 의지는 너의 것이다. 그것 외에는 모두 타인의 것이며, 운명의 것이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세계 속에 서 있다. 그러나 그 흔들림에 굴복하지 않고, 나만의 작은 등불을 지킬 수 있다면, 그 삶은 이미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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