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욕망 살아 있는 한 꿈꾸고,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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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람은 욕망 살아 있는 한 꿈꾸고, 가지려 한다"

by 스토리 플레이어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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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무게, 삶의 진실

사람은 욕망의 동물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원하고, 꿈꾸고, 가지려 한다. 작은 것을 원할 때도 있고, 때로는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야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욕망에는 한 가지 공통된 진실이 있다. 무거운 것을 들려면 힘이 들 수밖에 없고, 가벼운 것을 들 때는 그만큼 수월하다는 것. 이는 단순한 물리의 원리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은 통찰이며, 우리가 살아가며 수없이 마주치는 삶의 본질이다.

많은 사람들이 큰 것을 원한다. 부, 명예, 사랑, 성공, 영향력. 그러나 그 무게를 견딜 준비는 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크되, 그에 따르는 고통과 노력, 불확실성을 피하고 싶어 한다. 마치 무거운 짐을 들고 싶어 하면서도, 땀이 나지 않길 바라고,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그러나 그런 세상은 없다. 무거운 것을 들려면, 그 무게만큼의 힘을 길러야 한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은 훈련과 인내, 의지를 축적해야 한다.

이 사실은 너무도 자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어 보이지만, 정작 삶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 단순한 진리를 망각한다. 큰 것을 손에 넣고자 하면서도, 작은 고통조차 견디려 하지 않는다.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하루 한 줄을 써내는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은 적고,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매일 새벽을 깨우며 쌓아야 하는 노력에 몸을 던지는 이는 드물다. 그리고 그 간극에서 사람들은 고통받는다. ‘왜 나는 되지 않는가’, ‘왜 내 욕망은 실현되지 않는가’라고.

 

 

1. 욕망의 크기와 책임의 무게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인간의 욕망과 책임의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네가 원하는 것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바라라. 욕망은 너를 시험한다.”

우리가 원하고자 하는 것의 크기는 곧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예고한다. 큰 부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만큼의 불면과 책임, 그리고 유혹의 그림자까지 함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뜨거운 사랑을 원하는가? 그만큼의 상처와 상실의 두려움, 헌신의 무게도 감당해야 한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2. 고통 없는 성장은 없다

무엇이든 가볍게 얻은 것은 그만큼 가볍게 사라진다. 복권으로 부를 얻은 사람들이 파산하기 쉬운 이유는, 그 무게를 견딜 내면의 근육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 없이 쥔 사랑은 쉽게 식고, 준비 없이 맡은 권력은 폭주한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 통증을 견디는 시간 동안 근육이 형성되고, 실패를 통과하는 동안 내면의 지지대가 세워진다.

불교에서는 이를 *수행(修行)*이라 부른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욕망을 끊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넘어서는 내면의 연습이 필요하다. 즉,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통 없는 성장은 없고, 성장 없는 삶은 공허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있으며 그 무게를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성찰하는 데 있다.

 

 

3. 현대인의 허상 — 빠르고, 쉽고, 고통 없이

오늘날 사회는 ‘노력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팔고 있다. 하루 10분 투자로 수익을 내는 주식 강의, 단기간에 몸을 만드는 피트니스 프로그램, 감정 없이 성공하는 인간관계 전략서. 이 모든 것들은 한 가지 공통된 거짓말을 속삭인다: “큰 걸 들고도 힘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 아니다.

진짜로 무거운 것을 들려면, 매일의 훈련과 땀이 필요하다. 때론 실패하고 주저앉기도 하며, 자신을 미워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비로소 ‘들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스티븐 킹은 하루 2,000단어씩 10년을 썼고,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 농구팀에서 탈락한 후에도 매일 연습을 거듭했다. 무거운 것을 든 자들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4. 무거움을 껴안는 존재의 방식

무거운 것을 들려면 단지 힘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껴안을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 누군가는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자들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

록』에서 이렇게 썼다.

“무거운 운명이 너에게 닥쳤을 때, 그것을 저주하지 마라. 그것은 너를 단련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는 제국의 황제라는 막중한 책임을 피하지 않았고, 고통 속에서 자신을 길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욕망을 품었다면, 그 무게를 짊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무게는 나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나를 새롭게 세우기도 한다. 삶이란 결국, 어떤 무게를 껴안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5. 끝없는 갈망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법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것을 바라게 되고, 작은 성공은 더 큰 성공을 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무게를 어떻게 지탱할 것인가이다. 욕망이 커질수록 고통은 필연이고,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인간은 그것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가능성 중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을 가질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견딜지 선택할 수 있다. 무거운 것을 들고자 한다면, 그 무게에 맞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 성숙해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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