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철학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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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스토아 철학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by 스토리 플레이어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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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무게를 견디는 법"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본성이 있다. 돈, 명예, 관계, 성취, 인정… 우리는 하나를 이루면 안도하기보다 곧장 다음 목표를 향해 고개를 든다. 처음엔 작은 소망이었다. 오늘보다 나은 삶, 어제보다 좀 더 여유로운 하루. 그러나 그 바람이 실현되면, 마음은 곧 익숙함에 물들고, 또 다른 결핍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스토아 철학자들에게도 익숙한 문제였다. 세네카는 말했다. “욕망은 자라나며, 억제하지 않으면 자신보다 더 큰 주인을 만든다.” 그는 욕망이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족쇄임을 꿰뚫어 보았다. 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쓴다. “바깥의 일에 휘둘리지 말라. 너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너를 해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욕망을 없애야 하는가? 아니면 무시해야 하는가?

스토아 철학은 욕망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집중했다. 그들은 욕망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정했다. 문제는 욕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면, 또 다른 것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인간의 모습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의 무게를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그 커진 바람이 불러올 좌절과 피로, 질투와 두려움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성공이 주는 기쁨은 찰나에 불과하다. 오히려 성공 이후에 따르는 책임, 지속적인 기대, 새로운 경쟁이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반복될수록, 삶은 쉬어갈 틈을 잃고, 우리는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인다. 큰 욕망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우리는 그 욕망에 잠식당하고 만다.

 

스토아 철학은 외부의 결과보다 내면의 태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감정을 소모하지 말고, 오직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했다. 즉,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그걸 이루기 위해 어떤 마음을 유지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욕망이 클수록 그 무게도 커진다. 그래서 스토아인은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 고통을 인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욕망은 아직 내 것이 아니다. 욕망이 아니라, 허영에 불과하다.

 

성공은 외적인 성취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반드시 고요한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흔들림 없이 욕망의 무게를 지탱하는 뿌리 깊은 마음, 그것이 없다면 어느 순간 작은 바람에도 삶은 무너진다. 그래서 스토아인은 먼저 자기 내면을 다진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고, 자신의 감정을 점검하며,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훈련을 한다. 그것이 곧 ‘삶을 철학하는 자세’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분명 어떤 바람을 품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더 나은 자리를 원하고, 누군가는 더 깊은 사랑을 원하며, 누군가는 더 많은 자유를 꿈꾼다. 하지만 그 바람은 곧 무게다. 당신의 어깨 위에 얹힌 짐이며, 당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바람이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진정으로 소유하게 된다.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그것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자유’다.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부의 준비를 통해 얻는 자유. 흔들리지 않는 평정과, 고통을 감싸는 인내. 그리고 그것을 뚫고 나가는 의지.

 

오늘도 우리는 또 다른 바람을 품는다. 괜찮다. 그러나 그 욕망을 품을 때마다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이 무게를 견딜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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