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의 그림자, 욕망의 그림자
“삶은 원래 괴로움이 아니라, 내 욕심이 괴로움을 만든다.” – 법륜스님
사람들은 살아가며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삶은 고해(苦海)라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륜스님의 이 한마디는 삶에 대한 그 전제를 송두리째 흔든다.
삶은 본래 괴로움이 아니다. 괴로움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된다. 내 기대, 내 욕심, 내 방식대로 세상을 통제하고 싶은 집착이 괴로움을 낳는다.
그러므로 괴로움은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착각의 산물이다.
모든 괴로움에는 기대가 있다
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대부분 이렇다.
-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 원하는 일이 원하는 방식대로 풀리지 않을 때
-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
- 누군가가 나를 오해하거나 비난할 때
이런 상황들 자체는 ‘사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에 어떤 해석과 감정을 부여할 때, 그것은 괴로움으로 변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는 이유는 단지 그 말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서 따뜻한 말, 이해, 존중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기대가 없었다면, 상처도 없다.
그렇다면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품은 기대에서, 그 기대가 좌절될 때 느끼는 실망에서, 결국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욕심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욕심은 항상 현재를 부정한다. 지금의 상태는 부족하다고 말하고, 더 나은 것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라 부추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돈도, 사랑도, 인정도, 성취도.
문제는 이 욕심이 한계를 모르며, 충족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욕심으로 형태를 바꾼다는 점이다. 작은 목표를 이루면 더 큰 목표를 향하고, 그 목표에 닿으면 또 다른 것을 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현재의 삶을 부정하는 습관에 길들여진다.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를 잃고, 지금을 살지 못한 채, 늘 결핍 속에 괴로워한다.
욕심은 이렇듯 스스로 괴로움의 씨앗을 뿌리고, 그 열매를 자기가 먹는다.
삶은 그저 흐를 뿐이다
삶은 괴로운 것이 아니다. 삶은 그저 흐른다.
아침이 오고, 해가 지고, 계절이 바뀌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진다.
이 흐름은 본래 선도 악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흐름에 ‘이래야 한다’는 틀과 기준을 들이밀 때, 괴로움이 시작된다.
- 사랑은 이렇게 표현되어야 한다.
- 일은 이만큼 성과가 나야 한다.
- 나는 이 정도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저 사람은 내 기준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삶은 아무런 판단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이 그 흐름을 가로막고,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고, 억지로 바꾸려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부자연스러움이 결국, ‘괴로움’이라는 결과로 돌아온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
괴로움은 종종 통제 욕구에서 온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내 뜻대로 바꾸려는 마음.
그러나 현실은 늘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바꾸기 어렵고, 상황은 예측할 수 없고, 세상은 나를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괴로워하는 건, 세상을 바꾸려는 욕망이 아직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은 묻는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왜 그것이 너를 괴롭게 만드는지 바라보라.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괴로움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고요한 삶을 위한 첫걸음: 욕심을 알아차리기
괴로움을 없애려면 먼저 욕심을 없애야 한다. 그러나 욕심을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심을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다.
- 나는 왜 저 말에 상처받았는가?
- 나는 왜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는가?
- 나는 왜 이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가?
이 질문들 안에 욕심이 숨어 있다. 그 욕심을 들여다보고, ‘그 욕심이 없다면 나는 어떤가’를 사유해보는 것. 이것이 철학적 성찰의 시작이다.
이런 깨달음이 쌓이면, 우리는 반응하지 않고 바라보는 삶,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삶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
괴로움을 줄이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어려운 방법은 바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지금의 나를, 지금의 상황을, 지금의 감정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이 받아들임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로 가는 문이다.
욕심이 만들어낸 ‘이래야 한다’는 환상을 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고요함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안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삶은 본래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을 괴롭히고 있었음을.
마지막으로, 괴로움이 사라질 수 있는가?
괴로움은 인간에게서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로움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관조하며, 스스로 그 감정과 욕심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면, 괴로움은 더 이상 우리 삶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괴로움은 여전히 오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또 한 번의 깨달음의 기회가 됨을 알기에.
그래서 다시, 법륜스님의 이 말로 글을 맺는다.
“삶은 원래 괴로움이 아니라, 내 욕심이 괴로움을 만든다.”
이 진실을 가슴 깊이 새긴다면, 우리는 점점 더 가벼운 삶,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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