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담긴 진실은 때로 수십 권의 철학서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모두 제각기 다르고, 어떤 이는 우리를 사랑스럽게 만들고, 어떤 이는 끝없는 분노의 늪에 빠지게 한다. 인간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고통의 상당 부분은 “저 사람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한다.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 싸우는 대신, 그 사실을 인정하고 평화를 선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실천적 지혜이며, 마음의 자유를 얻는 첫걸음이다.
1. 스토아 철학의 핵심 –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에픽테토스는 『담화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것이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이 문장은 스토아 철학 전체의 뼈대를 이룬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판단, 감정, 태도, 욕구, 의지뿐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 생각, 감정, 성격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누군가를 우리의 뜻대로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주 이 경계를 넘는다. 누군가가 무례하게 말하면, 우리는 분노한다. 친구가 우리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하면 실망하고, 연인이 변하지 않으면 끝없이 상처받는다.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저 사람이 왜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왜 변하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있다. 이 바람은 집착이 되고, 고통이 되고,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스토아 철학은 그 족쇄를 스스로 풀 수 있는 열쇠를 준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왔고, 수많은 경험과 상처와 습관 속에서 지금의 그가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람을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그 존재를 인정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내 감정에 책임지는 일이다.
2. 판단을 멈추는 순간, 평화가 찾아온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부의 사물은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다. 오직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는 자주 타인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해석하고, 평가하고, 판단한다. 누군가 말이 없다면 “날 무시하나?”, 늦게 연락이 오면 “관심이 없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는 단지 말이 없는 사람일 수 있고, 바쁜 일정 때문에 늦게 연락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의 행동이 나를 불쾌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행동을 불쾌하다고 해석했기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라는 말은, 그 판단을 잠시 멈추자는 초대다. 스토아 철학은 외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좋다’ ‘나쁘다’의 프레임을 벗기고, 단지 존재를 인정하는 것. 그렇게 되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배경이 된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평화가 잉태된다.
3. 감정은 적이 아니다, 주인으로 돌아가는 길
많은 이들이 스토아 철학을 ‘감정을 죽이는 철학’으로 오해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억누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그것을 인식하고 다스리라고 말한다.
에픽테토스는 “우리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판단 때문에 괴롭다”고 했다.
예컨대 누군가 내게 비난의 말을 던졌을 때, 스토아인은 그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묻는다.
“이 말은 나의 본질을 해치는가?”
그리고 대답한다. “아니다. 나의 본질은 내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라는 말은,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자기기만이 아니라, 자기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선언이다. 감정은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의 방향타를 내가 쥘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상대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한 내면의 안정은 곧 평정심이며, 스토아가 말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4. 받아들임은 포기가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다
많은 이들은 받아들임을 ‘무기력한 체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아의 받아들임은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인을 변화시키려는 것은 겉으로는 사랑 같지만, 그 안에는 나의 욕망과 기대가 숨어 있다. 반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은 비로소 그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첫걸음이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결핍과 어리석음마저 껴안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이해가 되고, 연민이 되고, 때로는 조용한 사랑이 된다. 변화시키려는 사랑보다 훨씬 깊고 넓은 사랑이다.
스토아 철학은 우리가 타인을 존중하고, 나를 다스리며, 세상을 수용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성숙이다. 고요한 수면 아래로 깊이 잠수해 들어가듯, 세상의 소란을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다.
5. 변화의 열쇠는 ‘나’에게 있다
결국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뿐이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누군가를 바꾸려 하며 고통스러워할 때, 스토아 철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마음 쓰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그 사람의 말투, 행동, 성격, 기질, 태도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바꿀 수 있다.
이 진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는다. 오히려 중심을 잡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평화는 인정에서 시작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이 말은 포기의 말이 아니라,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다.
스토아 철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바꿀 수 없는 것과 싸우는 대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마음의 고요함이 찾아온다고.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더 넓고 깊은 사랑과 이해에 이르게 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욕망 대신, 자신을 다스리는 지혜를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평화는 천천히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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